Column
남쪽 계단을 보라
홍재억의 ‘책장과 CD장 사이에서’ (제8회)
제목: 남쪽 계단을 보라
지은이: 윤대녕
출판사: 문학동네
발행일: 2013년 8월 16일
‘남쪽 계단을 보라’는 단편소설 6편과 중편소설 2편이 담긴 소설가 윤대녕의 작품집이다. 이 책은 2003년 출판사 세계사에서 출간된 뒤 절판되었다가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개정판으로 나오면서 되살아났다. 음반으로 따지면 리마스터링인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며 순간순간 떠오른 짧으며 잊히지 않는 이미지를 적는다.
245P
“녹색갤러리 지하에 있는 ‘싸스’라는 카페로 우르르 몰려 내려간다. 천장이 낮고 푸르스름한 조명에 감싸여 있는 집이다. 마룻바닥인데다 의자가 푹신해서 욕조에 들어가 앉아 있는 것 같다. 주인은 짧은 머리를 한 서른세 살의 젊은이로 대금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일행 중에 누군가가 우리에게 젊은 대금을 소개한다. 밀러 맥주와 마른안주가 나온다. 귀 안주는 스트롭스가 연주하고 부른 팔 분 오십 초짜리 <Autumn>. 이런 데서 좀체 듣기 힘든 음악이다.” (사막의 거리, 바다의 거리)
- 스트롭스(Strawbs)의 ‘Autumn’, 누구 말마따나 가을하면 전어보다 먼저 떠오르는 곡이 아닐까 싶다. 1974년 발표한 [Hero And Heroine]에 담겨 있으며 3부작 키보디스트 존 호큰(John Hawken)이 작곡한 연주곡 ‘Heroine's Theme’과 보컬/기타인 데이브 커즌스(Dave Cousins)가 쓴 ‘Deep Summer Sleep’, ‘The Winter Long’으로 되어있다. 낮게 깔리는 베이스와 존 호큰의 무그(Moog)의 영웅 테마(Heroine's Theme)에 이어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깊은 잠에 빠져드는 여름(Deep Summer Sleep) #### 노래의 작은 제목입니다 ####
가을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요.
안개가 하루 종일 걸려 있네요.
새들도 날갯짓하며 떠나갈 채비를 합니다.
푸르던 나무에서 누런 기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추억이 떠오르네요.
당신과 나만의
가을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요.
짙게 타오르던 태양이 저물며
대지가 석양으로 붉게 물듭니다.
이렇게 여름이 가는군요.
북풍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지며 낙엽이 됩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땅으로 조용히 돌아갑니다.
긴 겨울(The Winter Long) #### 노래의 작은 제목입니다 ####
흐르는 개울
바다에서 불어오는 미풍
발에 밟히는 야생화 무성하건 변함이 없네요.
부슬부슬 눈이 날리고
촛불에 홍조 띤 얼굴 속에서
우리 만남의 기쁨을 확인합니다.
내게 와요.
당신을 지켜주겠습니다.
긴 겨울
당신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내게 와요.
당신을 지켜주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할 단 한 사람이 저였으면 합니다.
가을이 한창인 요즘, 이런저런 걱정 잠시 잊고 욕실에 들어가 앉은 듯 푹신한 의자가 있는 카페에서 큼지막한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Autumn’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깊은 잠에 빠져드는 여름’과 ‘긴 겨울’의 가사가 적힌 종이를 옆에 두고.
281~283P
“땀을 식힐 겨를도 없이 삼대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조부의 묘에 절을 하고 나서 아버지는 방금 올라온 쪽을 휘 둘러보며 매번 올 때마다 늘어놓던 말을 또 중얼거렸다. (중략) 아버지는 조금 더 조부의 묘 앞에서 지체하며 듬성듬성 올라온 잡초를 솎아낸 다음 자, 이제는 요 아래로 내려가보자 하며 상수 녀석의 팔을 잡고 아까처럼 또 앞장을 섰다. (중략) 자 여기야. 내 죽으면 여기 갖다 묻어라. 행여 태우지 말고. !…. 이태 전 수술을 받은 뒤 내려와서 봉분만 미리 써놨다. 언제 갈지 모르는데다 지금 알려놓지 않으면 나중 허둥들 댈까봐. (중략) 그럼 나중에 여기가 할아버지 집이야?” (새무덤)
- 글을 읽다가 매번 이상한 생각을 한다. 이번에도 예외가 없었다. ‘묘’를 영어(외국어)로 번역한다면 ‘Tomb’으로 해야 하나, ‘Grave’로 해야 하나. 며칠 혼자 고민하다가 ‘Tomb Grave Difference’로 검색해봤다. 나 말고도 이런 걸 궁금해 하는 사람이 역시 있었다. 누군가 올린 질문에 이렇게 댓글에 달려있었다. 관의 위치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Tomb’인지 ‘Grave’인지가 결정된다고 한다. 관을 땅에 묻고 봉분을 올린 것을 ‘Grave’, 관을 땅에 놓고 봉분을 올린 것이 ‘Tomb’이라 한다. 정리하면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묘가 ‘Grave’인 것이고, 왕릉이나 피라미드 같이 관이 땅 위에 있는 것이 ‘Tomb’이다. 그렇다면 저 위에 있는 ‘묘’는 영어로 ‘Grave’가 된다. 이러다 보니 배가 산으로 간다. 어느덧 에덴(Eden)의 ‘Lonely Grave’가 생각난다. 에덴은 1989년 [Friday Afternoon Ⅱ]로 인상 깊은 데뷔를 한 뒤 1993년 킹레코드에서 1집이자 마지막 앨범인 [Adam's Dream]을 발표했던 헤비메틀 그룹이다. 이들의 음악은 블랙 새버쓰(Black Sabbath), 킹 다이아몬드(King Diamond)에 영향을 받아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앨범을 잃어버려 들을 수 없었지만 이 앨범에 대한 인상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중 ‘Lonely Grave’는 킹 다이아몬드의 흔적이 짙게 묻어 있는 사운드와 후렴구 보컬이 멋지게 조화를 이룬 곡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킹 다이아몬드가 1980년대 후반 즈음 국내에 소개되었으니까 이들은 최신 음악장르를 실시간으로 한 것이 된다. 음악의 좋고 나쁨을 따지기 전에 에덴의 이러한 시도, 실험은 현재 시각으로 보더라도 큰일이고 박수 받아 마땅하다. 온라인에서 이 앨범을 두고 ‘저주받은 걸작’, ‘숨겨진 걸작’이라 표현을 하는 것도 시도에 대한 보상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생각하고 큰 틀로 걸작이라는 평가에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재발표되었으면 하는 국내 헤비메틀 앨범 중 1순위가 [Adam's Dream]이다. 다시 듣고 싶다는 욕심도 욕심이지만 에덴에 대한, [Adam's Dream]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냥 이대로 떠나보내기 아쉬운 앨범이며 앞으로 국내에서 이러한 음악을 하는 그룹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래서 더 조급해지고 안달이 난다. 내 머릿속에는 유튜브에서도 검색되지 않는 외로운(Lonely) 그룹 에덴의 음악이 드문드문 하지만 뚜렷하게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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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 8월 합본호에 ‘헤비메틀 긍정’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오랫동안 이 글에 ‘헤비메틀 긍정’이 어울리는 지에 대해 생각했고 성급한 시도였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제 불찰이었고 ‘헤비메틀 긍정’은 다른 방식을 통해 이어나가는 것을 하겠습니다. 글을 읽는데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원본 지면 (p.122-124)· 3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