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숨겨진 스래쉬메틀의 명반을 찾아서

고종석의 ‘성성(聖聲)의 메아리’ (제15회)

고종석·p.118-119

Big 4 안에서 슬레이어가 갖는 의미

‘빅 4(Big 4)’로 불리우는 메틀리카(Metallica), 메가데쓰(Megadeth), 슬레이어(Slayer), 앤쓰렉스(Anthrax). 이들 안에서 슬레이어의 음악은 펑크를 스래쉬메틀에 가장 다채롭게 도용시킨 그룹으로 손꼽힌다. 때문에 슬레이어의 음악은 빅4 그룹 가운데 하드코어와 그라인드코어의 확장된 사운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는 메틀리카의 [Kill'em All]과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1집 [Show No Mercy]의 ‘Black Magic’과 2집 [Hell Awaits]의 ‘Necrophiliac’ 트랙에서 잘 전달된다. 다소 정돈되지 못했던 두 장의 앨범이 갖는 음악적 질감은 기본적으로 베놈(Venom)의 영향 아래 펑크와 NWOBHM의 건실한 트윈 기타와 리듬 비트, 그리고 여타 그룹들보다 탁한 보컬과 함께 담겨져 있다. 짧은 러닝타임을 지닌 곡들을 수미쌍관의 콘셉트 아래 기획했던 초기 음반들의 정점은 데뷔 앨범의 ‘Evil Has No Boundaries’와 같은 전율스러운 전개를 통해 지금에 들어도 결코 쉽게 지나치지 못 할 정도의 정갈한 감각을 지녔었다.

이렇듯 슬레이어의 음악은 극강의 사운드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헤비메틀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장점을 지닌 사운드를 표방했으며, 보컬 톰 아라야(Tom Araya)의 피를 토하듯 처절한 보컬과 커다란 톱니바퀴가 맞물린 채 쉴 틈 없이 전개되는 트윈 기타, 그리고 두 톱니바퀴에 변칙적인 속도감을 부여하는 드럼과 베이스의 조화가 돋보인다. 스래쉬메틀은 물론 자신들의 음악적 목표를 설정한 채 한 치의 동요도 없이 상승하며 한 길을 걸어왔던 그룹 슬레이어. 이들이 선보여온 음악은 동시대에 오버와 언더그라운드의 견고한 승화를 이루어 왔던 메틀리카보다 사운드의 진화와 양식의 확장 면에서 분명한 역할과 그 이상의 영역을 보여줬다. 2007년과 2008년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메틀 퍼포먼스상’을 수상하면서 이들에 대한 음악사적 위치는 뒤늦게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슬레이어는 리메이크 앨범인 [Undisputed Attitude]를 제외하면 총 10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총 수록곡은 스페셜 에디션이 아닌 정규 곡만으로 102곡에 이른다. 스래쉬메틀의 시작과 끝을 보여준 그룹 슬레이어. 1980년대 초반 메틀리카와 메가데쓰의 발 빠른 흐름이 베이 에이리어 언더그라운드 그룹들에게 성공을 위한 청사진과 과정을 보여줬을 때, 슬레이어는 LA메틀과 네오 클래시컬메틀 등으로 점철되던 씬 전체에 스래쉬메틀의 전진과 확장을 이끌어냈으며, 3집 앨범 [Reign In Blood]를 전후해서 데쓰메틀과 블랙메틀의 생성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결과적으로 같은 시기 발표된 메틀리카와 슬레이어의 데뷔 앨범은 ‘뭐든 예쁜 게 짱이야’라는 인기폭발의 헤비메틀 사이에 스래쉬메틀의 혼을 분명하게 심어줬다.

[Show No Mercy](1983)

최초 콘셉트가 어찌되었건 메틀 블레이드에서 발매된 슬레이어의 데뷔 앨범은 자켓에서부터 전달되는 느낌답게 악마주의를 상징하는 펜타그램과 흑마술, 반그리스도적인 가사들로 채워져 있다. 이는 “당시 LA메틀을 중심으로 사랑과 섹스, 약물에 대해 노래하는 것보다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주제를 다루고 싶었다.”는 톰 아라야의 인터뷰 내용으로 이는 의도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3집 [Reign In Blood] 이후 이어지는 전쟁과 세계사와 관련된 주제에서 엿볼 수 있듯이 데뷔 당시의 단순한 콘셉트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 앨범은 기타리스트 케리 킹(Kerry King)의 아버지에게 돈을 빌리고, 보컬 톰 아라야가 통장을 털어 만든 앨범이다. 때문에 사운드의 퀄리티는 다소 뒤떨어진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진 헤비메틀의 철학은 단단하고, 섬세하다. 최초 클럽 투어 기간 동안 이들의 무대는 조악함 이상이었다. 친구와 지인들을 각 일정에 맞춰 조명과 음향을 맡기며 투어를 돌았다. 이들이 메틀 블레이드에서 오디션을 봤을 때 당시 연주했던 곡은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의 ‘Phantom Of The Opera’였다. 그러나 데뷔 앨범에는 아이언 메이든보다는 베놈의 향취가 깊게 배여 있다. 앨범은 전곡에 걸쳐 제프 한네만(Jeff Hanneman)의 실력이 돋보인다. 작사에 있어서는 케리 킹의 역할이 컸다. 슬레이어가 나아갈 음악적 지표를 이미 1집에서 선보인 ‘Evil Has No Boundaries’는 악에는 경계가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빠른 전개 속에서 톰 아라야 보컬의 절규가 전율스러운 ‘The Antichrist’, ‘Metal Storm/Face the Slayer’는 현의 울림이 매력적인 곡이다. 스피드의 철학을 담은 스래쉬메틀의 명곡 ‘Black Magic’과 ‘The Final Command’, 그루브감이 인상적인 ‘Tormentor’ 등 샌프란시스코를 스래쉬메틀의 중심으로 이끌었던 슬레이어의 데뷔 음반은 발매 당시 그다지 큰 이슈를 이끌지 못했음에도, 헤비메틀의 역사 속에서 굵직한 앨범으로 꾸준히 기록되고 있다.

원본 지면 (p.118-119)· 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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