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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영원히 함께하는 시대의 목소리
김현식 미발표 앨범
10월 21일 발표된 김현식의 신보는 미발표 7곡과 그가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던 노래 등 총 21곡이 담겨져 있다. 그가 병상에서 통기타로 노래해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되어 새롭게 들려주는 노래들은 느낌과 형식이 다르기에 신곡과도 다름없다. 아니 그의 죽음이 새롭게 더 다가와서 마음이 섧기까지 하다. 숨을 거두기 2주 전의 목소리까지 담겨져 있는 김현식의 이번 음반의 사운드는 역시 투박함 그대로다. 정돈되지 않은 소리가 있는 그대로 담겨져 있다. 어렵게 녹음된 김현식의 노래에 스트링을 더해서 믹싱과 마스터링을 마쳐서 발표되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이가 읊조리는 자신 삶의 전부였던 음악. 그의 음악은 여전히 남겨져 슬프지만 아름다운 호흡으로 떨리고 있다.
시대가 남기고 기억하는 김현식
부유했지만, 음악 속에서 외롭게 성장했던 김현식은 종로의 음악다방 ‘벌판’에서의 활동을 시작으로 명동의 셀부르와 섬씽, 국제나이트클럽에 출연하면서 데뷔의 기반을 다졌다. 뒤늦은 1980년 서라벌 레코드에서 데뷔 앨범을 발표한 이후 그가 참여했던 적잖은 앨범들과 6장의 솔로 작품은 한국 음악사에 싱어 송 라이터의 개념을 굳혔고, 솔로가수의 대중화를 열었으며, 대한민국의 순수한 음악적 계보를 이어줬다. 그는 남다른 음악과 테크닉을 앞세우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쉽게 그의 음악과 노래에 빠져들었다. 당당함이 엷게 배인 목소리와 순수함이 깃든 눈빛, 그리고 보이지 않게 담겨진 음악의 풍성함에 기인했다. 그가 서른셋이라는 인생동안 지닌 삶의 무게는 그를 아끼고 사랑했던 많은 이들의 동경과 경외감을 동시에 포함한 음악으로 함축된다. 김현식의 인생은 누구보다 음악을 향한 기취가 특별했으며, 자신의 음악을 위해 인생을 걸었던 혼신의 연속이었다. 데뷔 앨범의 투박함은 2집과 3집에서 히트한 ‘사랑했어요’와 ‘어둠 그 별빛’, 그리고 ‘우리 이제’에서 정돈되어졌다. 이후 4집의 ‘비처럼 음악처럼’과 ‘언제나 그대 내 곁에’ 등을 통해서 블루스와 소울, 그리고 록의 열정을 한국적 소리로 담아내기 위해 편곡과 프로듀싱에 집중했다. 그의 유작인 6집처럼 그를 연상할 때 많은 사람들은 ‘불세출의 가수’, 혹은 ‘너무나 짧게 생을 마친 비운의 가수’라는 공통되면서도 분리되는 이미지를 연상한다. 김현식의 삶은 음악 이전, 호흡의 마디를 순결하게 완성시킨 신성이었다. 시대는 그를 이끌어냈고 그는 스스로를 발견했으며, 대중은 그를 온전히 포용했다. 그가 서른셋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남긴 결과물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더욱 아름답게 승화되고 있다.
김현식 음악이 이어져온 현재에 주는 의미
김현식은 들국화와 함께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시작을 알렸고,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그 끝을 맞이했던 뮤지션이다. 포크 음악을 주무기로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맏형이었던 조동진이 이끄는 하나기획 사단과 한국적 락음악과 블루스, 소울 등을 통한 대중음악의 성공을 이뤘던 대장 김영의 동아기획. 그 축에 가장 큰 기름칠을 했던 인물 역시 김현식이었다. 그는 언더그라운드에서의 성공에 안위하지 않았으며, 라디오와 TV 등의 미디어와 라이브 콘서트를 동시에 섭렵했던 최초의 뮤지션이기도 했다. 그의 음악에 대한 친화력은 한국 대중음악의 계보를 이으며 새로운 틀을 형성했다. 대가수 유재하는 물론 자신의 그룹이었던 봄여름가을겨울의 독립과 빛과 소금의 성공으로 이어진 김현식의 음악은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의 구심점이었다. 또한 엄인호, 한영애, 이정선, 정서용 등과 같은 선배 동료 뮤지션들과 함께 한국 블루스 음악의 커다란 축인 신촌블루스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동아기획과 함께 한국 언더그라운드의 대중화를 이끈 아티스트 김현식. 그의 음악과 생명이 끊긴 1991년. ‘내 사랑 내 곁에’가 담긴 그의 유작 앨범이 발매된 다음해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대중가요의 흐름은 뒤바뀌고 말았다. 그러나 역사의 유적과도 같은 김현식의 미발표곡 앨범은 새로운 결로 이어져, 2013년 대한민국 대중음악에 진정성을 고하고자 한다.
2013년 10월
원본 지면 (p.96-97)· 2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