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T IN PEACE
주찬권
믿을 수 없던 그 날, 거기서
취재, 글 한명륜 | 사진제공 들국화 컴퍼니
지난 10월 20일 밤 10시 남짓. 한 공연기획자이자 인적 관계에 있는 SNS 유저의 실시간 근황에 주찬권의 이름이 보였다. 부고였다. 그 후로 십여 분 쯤 지난 뒤 연합통신 속보에 그의 부음이 올라왔다.
워낙 급거한 터라 자택이 있는 경기도 분당에 빈소를 차릴 병원이 없어 서울 풍납동에 위치한 아산병원 장례식장 3층 34호에 빈소가 마련됐다. 이는 거기에 도착해서 안 사실이고, 연합통신에 소식이 올라왔을 때만 하더라도 장례식장과의 통화결과 유족들과의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기자가 출발한 것은 약 한시간 정도 뒤, 아산병원 측의 확인이 있은 다음이었다.
급히 차를 몰아 40분쯤 뒤에 도착했을 때는 방송국 카메라가 한 대 와 있었고 음악 관련 관계자들이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갑작스런 일이라 빈소에서 절을 하는데 영정사진조차 없었다. 언론에 나온 그의 빈소 영정사진은 그로부터 두 시간 정도 뒤에 들어왔다. 두 딸과 사위가 조문객을 맞았다.
유족과 인사를 하고 식당을 보니 전인권, 최성원의 모습이 보였다. 그 앞에 빈 자리가 있었고, 빈자리 옆에는 YB의 드러머 김진원이 있었다. 부고가 전해진 지 얼마 안 돼, 전인권의 목소리에는 아직 허탈함조차 채 찾아오지 않은 듯했다. 연신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그 앞에 후배들은 뭐라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지난 해 5월 주찬권의 솔로 앨범 [지금, 여기]의 쇼케이스 당시 최성원의 건강을 걱정했던 게 기억났다. “성원이 형의 컨디션이 많이 회복되어 곧 노래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고 했던 주찬권의 말대로, 들국화는 올해인 2013년 인천펜타포트락페스티벌에 나서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한 바 있다. 그리고 들국화는 새 앨범 작업 중이었다.
전인권과 최성원은 모두 “찬권이보다 우리가 건강은 더 위험했다.”며 그의 급거를 애도했다. 분당 자택에서 오후 5시쯤 갑자기 쓰러졌는데 심장마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듯 심장마비는 직접 ‘사인’으로 보지 않는다. 심장을 급히 멎게 할 만큼의 질병이나 지병이 ‘사인’이 된다. 문제는 워낙 갑작스런 일이라 병원 측에서도 심장마비의 원인을 몰랐다는 것. 의료진 측에서 일단은 사인을 ‘불명’으로 표했으나, 심근경색에 의한 심장마비에 무게를 두었다고 전해졌다.
사실 특별한 지병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고인은 살아생전 고지혈증 증세가 있었다. 그러나 고지혈증은 약물을 통해 증상을 개선할 수 있는 질병이라, 부고가 아닌 뉴스를 보고 찾아온 지인―YB의 김진원 역시 간접적으로 연락을 듣고 찾아왔다―들에게 그의 죽음을 납득시켜 줄 충분한 고리가 되지는 못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전인권은 “지난 해 앨범 녹음할 때, 무척 힘겨워했던 것으로 안다. 얼마 전 만났을 때 숨소리가 약하더라.”는 말을 전했다.
자정이 지나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이 들어섰다. “지난해에는 아시아나의 드러머 유상원 형이 돌아가셨다. 이태 연속 무슨 일인가.”하며 비통함을 전했다. 김도균은 오래 전 술을 끊고 차와 커피 등으로 건강한 생활을 지키고 있는 뮤지션. 그는 “최근 디지털 녹음과 음원 구현의 발전 등으로 (주찬권에게)드러머가 이를 이겨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을 것이다”는 조심스런 음악계 진단도 내 놓았다.
반가운 얼굴도 만날 수 있었다. 하찌와 TJ의 ‘하찌’ 카스가 히로후미 씨가 자리에 앉았다. “간 사람(주찬권)이 이렇게 모이게 해 준다.”는 모인 이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 그는 70년대 일본, 카르멘 마키 앤 오즈라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서 인정받은 바 있다. 과거 들국화 멤버들과는 그 당시부터 인연이 있었다고.
시간이 좀 지나는 중에 영정 사진이 들어오고 유족이 오열했다. 일순 장내가 숙연해졌다. 원래 한국의 장례에서는 빈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것이 유족과 고인의 영혼을 위로하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워낙 아쉽게, 그리고 주찬권이 생전에 언급한 바 ‘들국화의 남은 이야기’가 현실화될 바로 그 시점에 떠났기에 여타 상가처럼 그럴 순 없는 분위기였다.
특이 사항이라고까진 할 수 없었지만 빈소엔 생각보다 20대 중후반의 젊은이들이 많이 보였다. 들국화 멤버들과 인연 있는 뮤지션들의 제자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음악인들의 2세들로 역시 음악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살아생전 젊은 뮤지션들과의 음악 교류를 중시했던 전인권. 지난 해 솔로 앨범 쇼케이스가 끝나고 베이스를 맡았던 김대건이 “선생님께서 우리를 배려해주시고 맞춰주시는 경우가 많다. 젊은 음악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신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첫 날 문상 겸 현장 취재를 마치고 빈소를 나섰다. 21일 새벽 3시 무렵이었으며, 동이 틀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문상객들은 병원 밖에서 담배를 피웠고 드문드문 도착하는 택시에서 내린 이들이 연기를 지나 빈소로 들어섰다. 발인은 다음 날이었으므로 실제 문상 기간은 21일 하루가 된 셈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는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루 리드(Lou Reed)가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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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파라노이드에서는 주찬권의 부고와 함께 그의 활동을 돌아보는 지면을 꾸미려고 했으나, 지면관계로 그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호로 이월합니다.
원본 지면 (p.92-95)· 4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