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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ng

어쩌면, 그는 리얼리스트 노아

한명륜·p.78-79

가끔 그의 음악 안에서는 길을 잃는다. 정연히 늘어선 개개의 음반들은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방이다. 그 방들은 이어져 있으면서도 별개의 공간이다. 최근에 거기 방이 하나가 더 있음을 알게 됐고 이 방이 ‘담긴’ 것은 결국 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팅의 새 앨범 [Last Ship]이 이제야 우매한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한 부분인 셈이다. 빅 밴드 재즈의 편성인 것 같으면서도 재즈라 이야기하기 어렵고, 리얼 오케스트레이션 등 클래시컬한 어프로치를 가졌으면서도 팝의 감각을 잃지 않는 것. 스팅의 새 음반을 만나는 일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미래를 인간의 느린 걸음으로 걸어 발견하는 일인 것인지도 모른다.

스팅의 음악은 후기로 갈수록 일희일비하는 감정을 그리기보다 서사적인 측면이 강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4, 5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안에 담긴 문장들은 전후 사정을 압축하거나 은유하며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물론 이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소리’를 통해서다. 어떤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목격한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과 서사처럼 편성된 악기 파트들이 연속적인 장면들을 직조해낸다.

여기서 스팅이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 각 민속악기의 음색들이다. 사실 그가 팝이나 클래식 등 현대 서구음악의 정형적인 포맷과는 다소 다른 어법의 민속적 악기나 사운드를 들여온 것은 낯선 방식이 아니다. 그 수단 역시 언어, 해당 지역 가수의 기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자신의 곡을 포르투갈어로 노래하기도 했으며 ‘Desert Rose’에서는 중동 출신 뮤지션의 보컬을 어떤 번역도 없이 배치해, 소재 속에 살아난 이야기를 살려내는 데 집중한 사례가 있다. 그는 민속 악기가 운용되는 방식이 해당 지역의 역사와 생활 방식을 노래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피들러 음색이 격렬한 인트로로 사용되는 ‘Sky Hooks and Tartan Paint’조차도 곡의 중심부에서는 끈끈한 느낌의 기타와 보컬로 참여한 브라이언 존슨(Brian Johnson, AC/DC)의 이야기를 추어올리는 재담꾼 역할을 한다. 그런가 하면 ‘The Last Ship’이라든가 합창적 요소가 돋보이는 ‘Hadaway’, ‘Show Some Respect’은 지역 노동요에서 가져왔으리라 짐작되는 남성적인 리듬이 생활의 온기를 여과 없이 느끼게 한다. 분명히 악기들은 제가끔의 균형과 우열관계를 주고받으며 정교하게 조직돼 있지만, 음악은 솔직함이 넘쳐난다. 솔직함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라 그것을 왜곡시킬 수 있는 것들과의 사투임을 알려 주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보는 게 틀리지 않다면, 이 앨범의 백미는 지난 7월에 싱글 커트되었던 ‘Practical Arrangement’가 아닐까. 나이 많은 남자가 젊은 여자에게 구애하는 이야기인 이 곡의 화법은 ‘은교’ 이적요의 심경을 조금 미니멀하게, 그러나 그만큼 더 리얼하고 ‘실제적으로(practical)’하게 들린다. 스팅의 음악은 환상이라기보다 악기들의 물리적 성질이라는 엄연한 현실에 의해 직조된 또 하나의 삶이다. 그렇기에 그의 음악적 화자는 ‘리얼’을 산다. 대뜸 “내가 많은 것을 바라는지”로 시작하기에, 곡의 말미에 “당신을 속일 생각이 없다”는 고백은 도드라진다. 재미있는 것은 이 내용이 숀 콜빈(Shawn Colvin)의 목소리로 크리스 보티(Chris Botti)의 [Night Sessions](2001)에 수록된 ‘All Wood Envy’의 테마이기도 하다는 것. 스팅의 팬이라면 떠올렸음직하다. 한편 여담이지만 ‘I Love Her But She Loves Someone Else’를 들으면 ‘Practical Arrangement’의 화자가 행한 고백의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치명적인 단서가 있는데 이는 찾아 듣는 재미를 위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자 한다.

사운드 측면에서 역시 그의 소울메이트랄 만한 기타리스트 도미닉 밀러(Dominic Miller)의 공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And Yet’, ‘Language Of Bird’는 언제든지 그의 기타만 있으면 스팅의 보컬이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증명하는 트랙.

이번 음반에는 또 한 명의 특별한 사람이 참여했다. 바로 공동 프로듀서이자 ‘Practical Arrangement’의 작곡에 참여한 롭 매시스(Rob Mathes)는 10월 27일(현지시각)으로 세상을 떠난 루 리드의 앨범 프로듀싱을 맡기도 했던 인물. 이런 식으로 뜻 깊어질 줄은 몰랐던 라인업이다. 그렇기에 스팅을 사랑하는 이들이 오랜 후에 그가 없을 때 그를 어떻게 기억할까를 문득 그려보게 된다는 그리 이상한 일만도 아닐 것이다. 물론 2011년 발표된 베스트 앨범의 뒤태를 보니 아직 그가 건강을 이유로 우리에 안녕을 고할 날은 다소 먼 듯하지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개인적으로는 ‘리얼리스트 노아’라고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좋은 음악 듣고 본의 아닌 악담 하는 것 같아 심히 죄송하긴 하지만.

THE LAST SHIP

원본 지면 (p.78-79)· 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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