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t In Peace
Lou Reed
비주류 락의 방향을 개척한 자, 이제 앤디 워홀의 곁으로 떠나다.
그의 부고를 접한 락계의 여러 뮤지션들과 헐리우드의 유명인사들 역시 곳곳에서 그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를 솔로로 복귀시키는 데 기여했던 데이빗 보위(David Bowie)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의 죽음은 커다란 슬픔이다. 그는 달인(master)이었다.”라고 말했으며, 그가 음악 커리어의 출발점이었던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를 1964년 함께 결성했던 멤버 존 케일(John Cale)은 “세상은 한 명의 훌륭한 송라이터와 시인을 잃었고, 난 내 학창 시절의 친구를 잃었다.”라는 말로 그를 잃은 슬픔을 표현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동료였던 드러머 모 터커(Mo Tucker) 역시 그에 대해 “관대하며 사려 깊고 상대를 격려해주는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은 어떤 이들에게는 가끔 지치는 일이 되었겠지만, 나에겐 그렇지 않았다. 내 생각에 우리는 서로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스미스(The Smiths)와 솔로 활동을 통해 영국의 대표적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은 모리시(Morrissey)역시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며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그의 음악은 평생 내 옆에 있었다. 그는 항상 제 마음 속에 담겨 있을 것이다. 루 리드처럼 그 자신의 법칙 속에서 움직인 분이 있었다는 것에 신께 감사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상이 얼마나 지루했을 지 상상해 보라.”
그의 음악을 처음 듣고 자란 세대도 당연히 그를 칭송해왔었지만, 사실 그는 자신이 한창 음악계에 혁명을 몰고 왔던 시기 이후의 세대에게 어쩌면 더 많은 존경을 받아왔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가 현재 ‘클래식 락’이라 부르는 당대의 주류 락 장르들(포크락, 하드락 등)이 한창 번영하고 발전하고 있던 시기에, 루 리드는 그 주류에 합세하기보다는 주류 락큰롤이 기존에 은근히 금기시 해왔던 메시지들-성적 타락, 약물 남용, 동성애, 우울증, 자살 등-로 접근해가는 실험에 음악적 목표를 설정했다(그를 ‘펑크락의 조상’, ‘모던락의 아버지’라고까지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런 파격과 기존 관념에 대한 저항에 근간을 둔다). 모두에게 ‘바나나 앨범’으로 기억되는, 팝 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품을 커버로 삼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뷔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1967)는 발매 당시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171위에 머물렀지만, 그 이후에 많은 음악 평론가들과 매니아들의 찬사 속에서 명반으로 재평가 받았다. 비록 루 리드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4집 [Loaded](1970)을 끝으로 그룹을 떠났지만, 3집 [The Velvet Underground](1969)에 담겼던 곡 ‘Pale Blue Eyes’가 영화 ‘접속’에서 사용되면서 한국에서 국민적 인기곡이 될 만큼 아방가르드적 실험성과 함께 우울하면서도 확실한 멜로디 라인을 만드는 데 탁월함을 보였다.
솔로 활동에서 그의 초창기는 힘겨웠지만, 그를 존경해온 데이빗 보위의 도움을 받아 프로듀서 믹 론슨(Mick Ronson)과 함께 발표한 2집 [Transformer](1972)은 싱글 ‘Walk On The Wild Side’, ‘Satellite Of Love’, 그리고 1990년대 영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에서 OST로 사용된 ‘Perfect Day’ 등을 히트시키면서 빌보드 앨범 차트 29위에 올라 그에게 상업적으로 최고 전성기를 안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1974년작 [Sally Can't Dance]가 앨범 차트 10위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그 이후의 루 리드의 활동 역시 매니아들에게는 열광적 지지를 받았지만 상업적으로 큰 재미를 본 작품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그의 화려한 재기작으로 평가받은 1989년작 순수 락큰롤 앨범 [New York], 존 케일과 함께 앤디 워홀을 추모했던 [Song For Della](1990), 그리고 비록 메틀 팬들에게는 혹평을 받긴 했지만 그를 존경해온 메틀리카(Metallica)의 백업으로 완성한 최근작 [Lulu](2011)까지 그는 항상 화려하고 대중적인 스포트라이트보다는 그 밖에서 꾸준히 자신만의 음악적 구도의 길을 걸었다.
비록 루 리드는 한국 땅에서는 그의 음악에 대한 정당한 재평가보다는 두 편의 영화 OST 트랙의 서정성으로만 일반 음악 팬에게 기억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해외의 음악 팬들 역시 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함은 20세기 후반의 대중음악을 함께 들으며 거쳐 왔거나 이를 사료로 이해한 이들이 아니라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쨌든 그는 남다른 길을 걸었던 자신의 음악적 커리어를 통해 그 이후 세대 음악인들이 더욱 개성 있는 락의 세계를 펼쳐도 상업주의로 가득한 대중음악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터전을 확보하게 만들어주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영원히 락 음악의 아이콘으로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이제는 하늘에 있는 앤디 워홀의 곁에서 함께 못 나눴던 예술의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기를.
원본 지면 (p.74-75)· 2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