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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 Temple Pilots With Chester Bennington
명료한 존재 이유 가진 락 음반
스캇 웨일런드(Scott Weiland)가 가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생활인으로서―의 능력을 잃었든 어쨌든 간에 그간 스톤 템플 파일러츠(Stone Temple Pilots;이하 STP)의 음악적 이미지에 관해 스캇이 가진 지분은, 스스로가 버리려고 해도 할 수 없는 무엇일 터다. 그만큼 누구에게든 이 개성 강한 밴드의 프론트맨 자리는 독이 든 성배였다. 물론 과거와 같이 락 밴드의 이합집산이 팬들의 멘탈을 지배할 만한 사건일 수 없는 시대라 해도 말이다. 체스터 베닝턴(Chester Bennington)이라는 이름 앞에 ‘with’라는 전치사는, 밴드와 프런트맨의 후보들에게 주어진 운명의 문패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이런 제약조건을 푸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원래 보컬리스트의 도플갱어 같은 보컬 퍼포먼스를 제시하는 것도 아이디어다. 이건 올 초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의 새 앨범 [Devil Puts Dinosaur Here]에서 윌리엄 듀발(William Duval)이 행한 전략이다. 그런가 하면 비즈니스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제휴를 통해 원래의 집단과는 또 다른 정체성의 무엇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 체스터 베닝턴은 후자다.
이렇게 거창하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사실 가십이 될 만한 의문거리는 별로 없다. 무엇보다도 어지간한 소식은 그 내막까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시대이다 보니 이런 만남의 전후에게 오갈 이야기들은 ‘비즈니스적으로 맞았겠거니’하는 짐작이 앞선다. 물론 음악적인 매칭은 기본 옵션이었을 터다. 하품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오히려 그렇기에 이번 EP는 오로지 STP와 새로운 보컬리스트가 만들어낸 합, 그 내적인 즐거움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런던에선 식사 중 대화를 하면 쫓겨나는 식당이 생겼다고 하는데, 모든 감각을 혀에 ‘몰빵’ 해주는 개념으로 보면 되겠다. 즉 귀에 감각을 ‘몰빵’할 수 있는 락음반이 되겠다.
첫 곡 ‘Out Of Time’부터 시작이 오소독스하다. 리듬 파트의 기어다니는 괴물 같은 모양새, 즉 STP 이미지의 전형보다는 다소 미니멀한 변형 8비트가 힘의 집중을 보여주고 있다. 이어지는 ‘Black Heart’나 ‘Same On The Side’에서도 마찬가지. 에릭 크레츠(Eric Kretz)의 드러밍과 로버트 딜레오(Robert DeLeo)의 리듬 파트의 합은 하나의 음마다 스피커 전체를 울리는 힘을 담아낸다.
이 육감적이고 심플한 리듬워크는 체스터 베닝턴으로 하여금 아예 스캇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도록 추동하는 계기가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베닝턴의 목소리는 저음에도 높은 배음이 많이 섞여 있다. 중고음부의 구사방식은 일견 빈스 닐(Vince Neil)과 유사한 질감의 비음이 들린다.
사실 보컬과 더불어 기타도 앨범의 전경에 뚜렷이 드러나 도드라진 재미를 준다. 전반적으로 퍼즈의 질감이 강하지만 고역대가 찌그러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중저음역대의 보조를 충분히 받으며 일그러져 상당히 화사한 느낌을 준다. 이를 바탕으로 아르페지오와 단선, 복선을 오가는 리프가 기분 좋은 시그니처를 만들어낸다. 솔로잉은 곡 내에서 개입의 위치 상 철저히 하드락 전성시대의 운용법을 따르고 있다. 즉 곡의 시그니처가 되는 리프 사이에서 보컬의 메인 멜로디를 변용하고 확장해, 결국 곡 전체의 범위를 넓히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다. 특히 미드 템포의 ‘Tomorrow’에서의 무겁고 널찍하게 흐르는 솔로의 멜로디는 비브라토가 적고 수시로 거칠게 솟아오르는 베닝턴의 보컬을 감싸고 돈다.
이러한 세부적 특징을 종합해 본다면, 곡의 요소들은 어떤 목적론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멤버들이 굳이 어떤 사운드와 스타일을 택했다기보다는 이들의 만남이 자연스레 흘러갈 방향이 그대로 제시된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손꼽히는 거물을 새로운 보컬 멤버로 맞았고, 거장의 밴드에 합류한 나름 베테랑 보컬리스트지만 이들이 집중한 것은 딱 하나가 아닐까. 곡 자체로 존재 이유가 충분한 락 음악을 만들자는 것. 그 의도가 선행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음악이라고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포스트 그런지’를 어디서 주문해 오는 부품처럼 쓴 아이돌 기획사의 홍보담당이 깊이 들어볼 만한 앨범이기도 하다.
HIGH RISE
원본 지면 (p.68-69)· 2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