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악녀(惡女)형 보컬리스트 (3)
송명하의 ‘Foxy Lady’ (제11회)
HIROKO NAGAI (永井博子)
일본 관서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패전트(Pageant)에서 활동했던 보컬리스트가 히로코 나가이로다. 패전트의 활동과 함께 르네상스 풍 심포닉락 그룹 미스터 시리우스(Mr. Sirius)에서는 리사 오키(大木理紗)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아름다움을 강조한 미스터 시리우스의 음악에 비해, 일본의 고전적 선율과 탐미적 락 음악을 결합한 패전트의 사운드에서 특히 히로코 나가이의 보컬은 그 빛을 발한다. 1986년 발표한 데뷔앨범 [螺鈿幻想(나전환상; 라덴겐소)]는 특히 유년기와 노년기,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가녀린 소녀에서 요기 어린 귀신의 모습까지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목소리의 떨림을 최소한으로 줄이며 아무런 감정 없는 목소리로 시작해서, 곡을 압도하는 음성으로 발전해 나가는 ‘Vexation’은 유로피안 아트락의 매력에 한껏 빠져있는 매니아라도 한번쯤 꼭 접해 볼만한 명곡이다. 그런가 하면, 행진곡 풍으로 진군하는 ‘Echo’에서의 힘에 넘친 보컬도 체크포인트. 비슷한 시기의 밴드 가운데에서 테루스 심포니아(Teru's Symphonia)도 메구미 토쿠히사(徳久恵美)라는 걸출한 보컬리스트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의 재능은 패전트의 히로코 나가이가 가졌던 것처럼 전면에 등장하지는 못했다. 이후 결성된 막달레나(Magdallena)의 유일한 음반에서는 두 보컬리스트의 운명적인 만남에 의한 결과물이 수록되기도 했다.
PASCALE SON
파스칼 선은 벨기에 그룹 코스(Cos)에서 활동했던 보컬리스트로, 기타와 플루트를 담당했던 리더 다니엘 셸(Daniel Schell)의 아내다. 코스의 음악에서는 재즈락 성향이 주를 이루는 프랑스의 자오(Zao)나 마그마(Magma)와 같은 그룹들의 영향이 느껴지며, 원초적으로는 햇필드 앤 더 노쓰(Hatfield And The North), 캐러반(Caravan), 길가메시(Gilgamesh) 등 영국 캔터베리 패밀리들의 직계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마그마나 자오의 음악을 들어 본 독자라면 음악을 듣기 이전에 고개를 먼저 저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코스의 재즈락은 이들의 음악에 비해 그다지 난해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파스칼 선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곡은 첫 번째 앨범 [Postaeolian Train Robbery]에 수록된 ‘Cocalnut’이다. 유영하는 듯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연주를 치고 올라오는 고음의 스캣은 언뜻 귀여워 보이는 외모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2집과 3집에 참여했던 마르크 올란데르(Marc Hollander)는 아크삭 마블(Aksak Maboul) 활동을 통해 뉴웨이브와의 결합을 통한 신선하면서도 실험적인 새로운 방법론을 실험대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DORIS NORTON
2000년대 들어서면서 활동을 재개하기 전 까지 수많은 의문에 둘러 싸여있던 이태리 그룹 야큘라(Jacula)와 안토니우스 렉스(Antonius Rex)의 보컬리스트. 야큘라에서 활동할 당시 이름은 피아마 달로 스피리토(Fiamma Dallo Spirito)다. 안토니우스 렉스는 야큘라의 기타리스트 안토니오 바르토체티(Antonio Bartoccetti)가 결성한 그룹으로, 그의 또 다른 이름이다. 도리스 노튼 역시 안토니오와 함께 안토니우스 렉스에서 활동했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난 음반은 야큘라의 데뷔앨범인 [In Cauda Semper Stat Venenum]이라고 할 수 있다. 300장 한정으로 발매되었던 까닭에 프로그레시브락 앨범 가운데에서도 초 희귀 아이템 가운데 하나인 이 음반은 1972년, 몇 곡의 싱글을 함께 수록하여 [Tardo Pede In Magiam Versus]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었지만, 이 역시도 1,000장 한정 발매된 까닭에 원본은 무척이나 구경하기 어렵다. 야큘라의 음악과 안토니우스 렉스의 음악이 가장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바로 키보드 파트다. 안토니우스 렉스의 사운드는 토니 아이오미(Tony Iomi)에 영향 받은 안토니오 바르토체티의 기타가 그 근간을 이루는 반면, 야큘라는 찰스 티링(Charles Tiring)의 키보드 사운드,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처치 오르간과 하프시코드 사운드가 핵이라고 할 수 있다. 장중하고 종교적인 분위기를 주도하는 이러한 밴드의 사운드를 구체화시키는 것이 바로 도리스 노튼의 비장하고 음산한 보컬이다. 별 다른 특징 없는 덤덤한 목소리라고 생각되지만, 그녀가 아니었으면 ‘U.F.D.E.M.’과 같은 명곡은 탄생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안토니우스 렉스 시절에는 키보드 연주까지 맡았고 이후 전자음악으로 음악성을 선회, 몇 장의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ELLEN MEYER
엘렌 마이어는 독일 출신 그룹 투모로우스 기프트(Tomorrow's Gift)의 보컬리스트다. 데뷔앨범의 자켓에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언뜻 성별을 알아채기 어려운 중성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 일찍이 정식 음반을 발표하기 전 선보였던 ‘팝 앤 블루스 페스티벌 70(Pop & Blues Festival 70)’에서 도노반(Donovan)의 ‘Season Of The Witch’를 20분이 넘는 연주로 꾸민 ‘Sound Of Which’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각인시키기도 했다. 1970년 발표된 셀프 타이틀의 첫 번째 음반에 수록된 ‘Prayin' To Satan’의 도입부와 중반부, 이펙트에 의해 잔뜩 왜곡된 보컬은 그 불경하기 이를 데 없는 곡의 제목과 함께 그녀가 왜 악녀형 보컬에 포함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당연한 이유가 아닐까. 1973년, 재즈락 성향이 강해진 두 번째 앨범 [Goodbye Future]를 끝으로 밴드는 해산하고 후신 그룹인 릴리즈 뮤직 오케스트라(Release Music Orchestra)로 거듭나게 된다.
원본 지면 (p.114-115)· 2페이지